어떤 여행이야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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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 [모나코] 그저 운으로는 얻지 않게 하소서 - 모나코
 미쯔    | 2008·09·03 00:15 | HIT : 21,602 | VOTE : 1,973

2002.12.2. 모나코. 

모나코행 기차안 화장실에서 방금 산 치약으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였다. 며칠새 피부가 까칠해져 있었다. 피부에 바를 만한 것이라곤 점퍼 주머니에 들어있던 샘플 로션 하나. 그나마 이거라도 생존해줘서 고마웠다. 그것도 아끼느라 손에 조금만 덜어내어 얼굴에 발라본다. 피부는 그까짓 것으로 쉽게 부드러워 지지 않았다.


니스에서 모나코까지는 기차로 2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모나코는 베네치아로 가는 길에 숙박없이 잠깐 들려 맛만 보려는 도시다. ‘그랑 카지노(Grand Casino)’라는 명물로 인해 ‘세계적인 도박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있는 것도 모나코에 잠깐 들를 구실을  보탠다. 여행중 카지노를 만나면 구경삼아 가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도박’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같은 상황에선 잃어버린 배낭 값을 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세속적인 유혹이 나도 모르게 생겨나 버린 것이다.


모나코 역을 빠져나와 일단 모나코 성으로 향했다. 큰 배낭이 없으니, 니스에서도 그렇고, 모나코에서도 그렇고 락커비는 들지 않는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 모나코 성안


모나코 성에 올라 내려다보는 모나코는 참 예뻤다. 몇년전 친구 결혼식 때문에 잠깐 가보았던 우리나라의 ‘여수’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쉬엄쉬엄 아름다운 경치를 사진으로 몇 장 찍어보는데, 자꾸 카메라 배터리가 빨리 닳을까봐 조바심이 났다. 일반 배터리를 쓰지 않는 내 디지털 카메라의 전용 충전기를 잃어버렸으니, 지금 있는 배터리가 다하면 그나마 사진도 찍을 수가 없는 것이다.

▲ 모나코 성에서 내려다본 모나코


모나코 성에서 내려오다가 한 기념품 가게에서 귀여운 아동용 비옷을 보았다. 캐나다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옷을 본적이 있었는데, 빨강, 파랑, 노랑 색색의 동물 모양으로 디자인된 비옷이었다. 7살, 5살, 3살박이 조카들이 입으면 너무 이쁠것 같았고, 캐나다에서 보다 가격도 훨씬 쌌다. 살까말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비싼 가격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산다해도 넣고 다닐 가방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해변가로 내려가는 골목길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결국 세벌의 비옷을 샀다. 검정 비닐봉지에 비옷을 담고 가게를 나오면서 흐뭇한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배낭족’이 아니라 ‘비닐족’이 되었다.


비옷이 든 검정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가이드북에 나온대로 해변 산책로를 찾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이미 그 곳을 뒤로 하고 항구를 지나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해변을 산책한 후 마지막으로 들리려 했던 ‘그랑 카지노’가 벌써 보여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발걸음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나는 지쳤고, 그렇다고 카지노를 먼저 갈려니 아직은 오픈 시간이 아니다. 어쨌든 문을 여는 오후 4시까지는 어디선가에서 시간을 떼워야 했다.


마침 슬슬 배도 고파져서 근처 피자가게에 들어가 피자로 점심을 먹었다. 이상하게 먹고 있어도 허기가 달래지지 않는다. 갑자기 평상시에는 잘 먹지도 않는 초코 비슷켓과 우유가 먹고 싶어졌다. 슈퍼를 찾아가 또 군것질을 했다. 그래도 자꾸 자꾸 배가 고프다. 몸이 허기진 것인지 마음이 허기진 것인지, 그 어느것도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카지노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의 ‘허기’를 채우리라. 잃어버린 나의 짐값을 카지노에서 한방에 되찾으리라.

 

▲ 그랑 카지노



그렇게 결연해 봤자 10유로 배팅이다. 그게 나의 카지노 이용 규칙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10유로를 칩으로 바꾸니 겨우 20개의 동전이 나온다. 사실 카지노에서 할줄 아는 것도 없다. 그저 당기기만 하면 되는 ‘슬롯머신’ 앞으로 갔다.  20개의 동전을 사용하는데는 딱 5분이 걸렸다.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카지노와 몬트리올 카지노에서 10달러로 슬롯머신과 한시간을 놀았던 것을 떠올리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규칙을 깨고 ‘더바꿔?’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10유로를 끝내게 해버린것을 보니, 하늘은 이따위로 내가 잃어버린 짐값을 보상받겠다는 불순한 생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신해철의 ‘기도’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노력한 것 그 이상은 그저 운으로 얻지 않게 뿌리치게 도와주시기를...“ 하늘이 돕고 있다. 나는 회심의 목적을 갖고 찾았던 카지노를 5분만에 미련없이 빠져나왔다.


밤 9시 3분에 떠나는 야간기차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더 남았다. 뭐하며 시간을 또 떼우나 생각을 하던 차에 어디선가 낯익은 한국 전통악기의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이 흘러 나오는 곳으로 따라가 봤더니, 어느 조그만 광장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가운 MBC와 KBS카메라도 보였다. 주위 곳곳에는 무언가 써있는 설치물들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Yeosu Korea’라고 써있다. 어랏! 여수? 모나코에 처음 도착했을때 떠올랐던 도시의 이름을 보게되다니... 재밌고도 놀라운 일이다.


옆에 서있던 스텝으로 보이는 한국 아저씨에게 이것이 어떤 행사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분 말씀이 2010년에 있을 해양엑스포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멕시코, 러시아, 중국, 폴란드 이렇게 5개 나라가 신청했는데, 여기 모나코에서 그 개최국을 내일 결정한다 하였다. 어차피 기차시간이 많이 남아있던 나는 무대 바로 앞에 제대로 자리잡고 눌러 앉았다. 이 낯선땅에서 흥겨운 한국 전통공연을 공짜로 관람하게 될줄이야. 맨 앞에 앉은 탓에 가끔씩 망가진 내 몰골을 비춰대는 방송국 카메라가 눈에 거슬렸지만, 혹시 이게 방송에라도 나가면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그리운 딸의 모습을 TV에서라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과연 그때 내모습이 방송에 나갔을까?)

▲ 그랑 카지노 앞에서 펼쳐지던 여수시의 공연


그렇게 반갑고도 시간떼우기 좋았던 공연은 30분쯤 더 계속되다 끝이 나버렸다. 나는 어딘가로 또 가야했다.


다시 슬슬 걸었다. 갑자기 카지노를 발견하는 바람에 아까 가보지 못한 해변 산책로나 다시 한번 가볼까 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모자를 쓰고 있었으므로 ‘이까짓 비쯤이야’하며 그냥 계속 걸었다. 비는 이젠 우박까지 동반하기 시작했다. 나의 유일한 작은 배낭이 젖어 들기 시작하자 얼른 배낭커버를 꺼내 배낭을 에워쌌다. 잃어버린 큰 배낭에 이 배낭커버를 넣지 않기를 잘했단 생각을 했다. 사실 이 배낭 커버도 내 것은 아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났던 여행자 은정씨에게 비가 오는날 잠깐 빌렸던 것인데, 헤어지면서 깜박 돌려주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지금은 다행으로 느껴진다. 인간이란 참 간사스럽다.


다시 해변산책로를 찾아 걷는데 이번엔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로 바뀌었다. 더 이상은 모자로 버텨낼 재간이 없어 우산을 꺼내 들었다. 오호, 이놈도 큰 가방에서 작은 가방으로 잘 옮겨두었네. 그러나 비는 너무 거셌다. 역시나 하나밖에 없는 나의 신발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잠시 비를 피했지만, 비는 쉬이 그칠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해변산책로를 포기하고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기차역에 도착해도 출발시간까지는 3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다. 무슨 하루가 이렇게 긴지. 평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선 가이드북을 들여다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혼자 할것이 너무나 많았을텐데, 나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고, 또 그 시간이 지루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가만히 있자니 자꾸 잃어버린 가방 생각이 나서 우울해 졌고, 다시 또 ‘어디까지 여행하다 돌아가게 될까’하는 암울한 생각만 밀려왔다. 그나마의 ‘생각’마저도 멈춰버리면 머리뼈속까지 적막이 흘렀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차역에 사람도 뜸해져, 결국 내가 앉아있던 벤치 근처에는 나 혼자만 남겨져 있었다. 옆에 있던 카페테리아도 문을 닫았고 이제는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이런 종류의 공포는 여행의 초반이었던 워싱턴에서의 느낌과 비슷하였다. 나는 이 적막감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노트를 꺼내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지루한 긴 하루를 글로 써내려 간다는 것이 지루하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었고, 덕분에 시간도 빨리 흘러가 주었다. (지금 이 글이 그때의 일기다.)


나는 어느새 그 짚시들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행 야간 기차에 앉아 있다. 위험하다고 해봐야 잃어버릴 배낭이 없으니 사실 두려울 것도 없다. 잃어버린 배낭이 다시 또 떠오른다. 내 배낭을 훔쳐간 그들은 나의 배낭을 열어보고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것도 값 나가는게 없는 배낭. 가이드북만 가득이고 옷가지와 세면도구밖에 없는 배낭. 그들은 그 배낭이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음을 잠시만이라도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물통으로 잠궈져 있던 내 배낭을 갈기갈기 찢어 발긴후  ‘별거없네? 재수없어.’하며 침이라도 뱉었을까? 뭐...좋다. 그래 다 버려라. 그렇지만 한가지. 적어도 그 속에 들어있는 나의 소중한 음악 CD들 만큼은 버리지 말고 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한국 노래 듣고서 좀 착하게 살아라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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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때 모나코에서는 2010년 해양박람회 개최지로 중국 상하이를 선정했다. 상하이와 여수는 4차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었지만, 결국 여수는 아깝게 패배를 맞봤었다. 그런데, 작년 11월경 파리에서 2012년 세계박람회의 유치국으로 우리나라의 여수가 드디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를 통해 잊고 있던 모나코에서의 기억을 다시한번 되새겼던 기억이 난다. 여수를 다시 한번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못가봤는데, 적어도 2012년에는 한번 가봐야겠다. 모나코 같았던 여수. 여수 같았던 내 기억속의 모나코.

istmax
미쯔...~~~~시간을 떼워야 했다... ~~~떼우나 생각을... 시간 떼우기 ...XXX
때워야.... 때우나... 때우기....ㅇㅇ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코 비슷켓 ????? 쵸코 비스켓.????? ㅋㅋㅋㅋㅋㅋ
열씨미 찾아 골라내며 ㅋㅋㅋ 거리며 읽어가는 재미도 엄청 재밋네...^^ ㅋㅋ

08·10·06 03:12 수정 삭제

미쯔
이건 뭐 어디 무서버서 여행기도 못올리겠습니다. T.T
근데요. 찿아 X -> 찾아 O
네줄짜리 댓글에서 월척낚은 기분인데요? ㅋㅋ

08·09·07 01:24

이언
얼마나 반가웠을까- 사물놀이 패를 모나코에서 ^^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지게 해준 고마운 경험이네요.

14·04·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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