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이야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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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프랑스 #3] 잃은 것과 남은 것 - 니스
 미쯔    | 2008·08·20 08:27 | HIT : 22,064 | VOTE : 2,299

2002.12.2. 아침. 니스. 

니스의 아침 공기는 잔인하게도 맑았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기차역 락커에 배낭을 넣어두고 니스가 어떻게 생긴 도신지 슬렁 슬렁 산보나 하다가 오후에 다음 도시인 모나코로 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락커가 보인다. 그러나 락커에 넣어둘 배낭이 없다. 락커를 그대로 지나친다. 어쨌든 잃어버린 배낭 덕에 ‘락커비’는 절약이 되었다. 앞가슴에 메고 다니던 작은 보조 배낭(유치원 책가방만한)을 이번엔 등쪽으로 맨채 터벅터벅 걷는다. 그렇게 넋나간 사람의 느린 걸음으로 니스 해변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분쯤 걸어가니 상상보다도 넓고 아름다운 니스의 해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바다다. 고향인 제주가 그리워지게 하는 바다다.


니스의 해변은 가는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다. 넋나간 사람이 털썩 주저앉기에는 좋았다. 그렇게 인적 하나 없는 쓸쓸한 겨울바다 해변에 혼자 주저앉아 망연자실 바다를 바라보았다.

 

▲ 그 와중에 사진을 다 찍다니, 내 자신이 놀랍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하늘에 물어보았다. 여행 중 절망의 끝을 경험해 보게 하기 위함이신지, 느슨해진 내 주의력에 대한 경고이신지, 이런 벌을 받을만큼 죄 짓고 산게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본다. 머리가 아프다. 휴.. 아니다. 일어난 것은 일어난 일이고, 지금은 현실을 살펴야 할때다.


‘그래서, 무엇이 없어진걸까.’


작은 배낭에 들어있어서 다행히 생존한 일기장을 꺼내어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캐나다에서 큰맘먹고 구입한 나이키 트레이닝복 위아래 한 벌, 두장의 긴팔 티셔츠, 두장의 반팔 티셔츠, 건빵바지, 프라하에서 내내 쓰고 다녔던 왁자지껄 분홍 털모자, 한번도 써보지 못한 새 오리털 침낭과 판쵸우비(인도갈 때 써야 하는데), 세면도구(수건,면도기,샴푸,바디클린저,머리빗...뭔가 더 있을텐데.), 화장품(파우더, 아이세도우, 립팔레트, 리큇파우더, 자외선 차단크림, 로션, 스킨, 립블러쉬, 눈썹정돈칼, 아이브러쉬 두 개...뭐 더 없나?), 머리 끈 2개, 식염수 큰거 한통, 먹다 남은 스위스 초컬릿 2개, 가이드북 4개(그리스,터키,이집트,인도편), 여행중 읽으려고 캐나다에서 구입했던 영어동화책(아직 한줄도 못읽었는데..), 생리대 두달분, 무릎담요, 각 나라에서 모은 기념 동전들, 수영복, 추운날 내복 대용으로 좋았던 검정 타이즈, 양말두개, 베를린에서 3유로 주고 산 베를린장벽조각이 들어간 엽서(아.. 정말 열심히 고르고 골랐던 것. 한국 가져가서 액자만들어 넣어두려했는데...), 속옷 2세트, 두건(머리관리 안될때 쓰고다니기 좋았는데..), 커피믹스 4~5개, 알람시계, 손톱깍기,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아.. 이게 젤 문제네), 캐나다 사스카툰에서 만난 여행자 J에게서 얻었던 가방 도둑방지 전시용 개 목걸이 쇠사슬(도대체 왜 들고 다닌거야), 번호 자물통 4개, 외국인 친구가 생기면 주려고 준비했던 100원짜리 동전 10개, 각종 여행자료(다녀온 곳에서부터, 앞으로 갈 나라에 관련된것에 이르기까지), 텍스 리펀 받으려던 캐나다 영수증,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지갑(다행이다),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 각종 약들(물파스, 진통제, 정로환, 지사제, 해열제, 데일밴드), 음악CD(이상은 6,7집, 핑크플로이드 the wall 2CD, 김민기 2집, 라디오헤드의 Pablo Honey 앨범, 기타 백업시디들), 그리고....... 그것들을 담고 있던 나의 빨간 배낭.


‘그래서..... 남은건 뭘까.’


복대안에 꼭꼭 숨겨놨던 것들(돈,신용카드,여권,유레일패스,유스호스텔증,국제학생증 - 사실 가장 중요한것들은 다 살았다), 그리고, 보조가방안에 있던 유럽가이드북, 썬글라스, 안경, 콘텍트 렌즈, 3단우산, 빨간 등산용 모자, 휴대용 cd플레이어, 음악 CD(넥스트 2집, 너바나 언플러그드 앨범, 버브의 Urban Hymns 앨범, 기타 백업시디), 배낭덮개, 동전지갑, 기차에서 닦으려고 따로 작은 배낭에 챙겨뒀던 유일하게 생존한 세면도구 칫솔과 치약, 로션 샘플하나, 작은 식염수통, 초컬볼과 기차에서 먹다 남은 빵, 반쯤 남은 생수통, 껌한통, 생리대 4개, 필기도구, 프라하에서 산 펜촉, 바늘쌈지, 맥가이버 칼, 일기장, 조그만 가계부 수첩.... 그리고, 따로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와 분홍색 털 목도리,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옷.


상황분석은 끝났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잃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처럼 중요한 것은 모두 복대와 작은 배낭에 넣고 있었다. 단지,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 하나가 맘에 걸린다. 로마쯤 가면 살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웃기게도 배가 고파져 왔다. 먹다 남은 빵과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 다시 멍하니 바다를 보았다. 그렇게 한시간 반을 앉아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펴보았다. 왼쪽편 멀리 언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가 샤또 언덕인가 보다. 니스에 오면 가볼려고 찜해놨던 곳이 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가이드북 보며 여기저기 찾아나설 컨디션이 아니어서 그저 바다나 이렇게 보다가 니스를 떠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눈에 띄니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언덕쪽으로 걸어갔다.

▲ 멀리 보이는 샤또 언덕

가까이 가보니, 샤또 언덕을 오르는 계단길이 보인다. 이 와중에도 높은 곳에 올라 니스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데 잠시 좋아하였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길에 공원을 보수하는 공사장 인부 아저씨들이 보였다. 그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봉쥬르”라는 인사가 나오는 걸 보면, 가방을 잃어버린 충격이 조금은 약해진것 같기도 했다.

▲ 샤또언덕에서 내려다본 니스의 지중해 바다. 12월 혹한에도 수영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이 보인다.

니스의 전경을 잠시 둘러 보고 나서 다시 기계적으로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내려가다 보면 막혀있고, 다시 올라가 다른 길로 내려가다 보면 또 막혀있다. 뭘까
. 내려가지 말라는 걸까? 뭐든 단념하지 말고 계속 오르라는 걸까? 사실 나는 언제까지 이 여행을 계속할수 있을지에 대해 아까부터 갈등하고 있었다. 유럽은 어떻게든 끝낼수 있겠지만, 이 상태로 터키도, 이집트도, 인도도 갈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나같은 길치가 가이드북도 다 잃어 버렸는데. 가지고 있는 정보도 하나도 없는데...

우여곡절 끝에 길을 발견한 나는 다시 터벅터벅 걸어 시내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는 길에 ‘골동품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을 지나쳤다. 어젯밤 아무일도 없었다면, 이런 시장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미친듯이 열광할 일이 었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비싸기만 하네’하며 지나친다. 지금 나에겐 ‘골동품 벼룩시장’이 필요한게 아니라 생필품을 파는 ‘마트’가 필요하다.


터벅터벅. 이런.. 또 배가 고파졌다. 보통 스트레스를 받거나, 뭔가 신경쓰고 있는일이 있으면 입맛이 없어지고 밥을 잘 못먹는 체질인데 이상하게 자꾸 배가 고프다. 이 상황에 먹을 의지라도 있으니 어쨌든 다행은 다행이다. 근처 카페테리아로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켜 다시 허기를 채운 후, 다시 마트를 찾아 나셨다.


다행히 꽤 규모있는 마트가 쉽게 발견되었고, 나는 당장 급한 몇가지를 골랐다. 샴푸와 린스가 필요했고, 치약도 필요했다. 속옷과 양말도 사야한다. 생수한통과 귤 한꾸러미도 집었다. 바디클렌저 앞에서는 살짝 고민하였다. 일단 더 이상은 내 조그만 보조가방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비누정도야 숙소에 있지 않을까 싶어 일단 바디클렌저는 포기하였다.


빵빵하게 터질것 같은 보조배낭을 유치원생처럼 다시 둘러 메고 모나코로 가기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청명했던 아침하늘과는 달리 곧 비가 올듯 오후의 니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지나원
정말 막막 하셨겠네요.. 제가 다 답답해요~ 얼마나 놀랐을까...

08·08·20 19:02 수정 삭제

이언
다시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 멋집니다.

14·04·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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